형사 콜롬보를 통해 미국 폭동 사태를 분석한다.
필자는 이번 평론 글에서 내용의 순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용어인 흑인 폭동 사태를 구사하며, 글을 전개한다.
미국에서 전시상황도 아닌데 흑인 폭동사태로 인해 사실상 계엄령이 선포된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다. 계엄령이란 국가의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계엄령 선포 지역은 사법권 및 행정권의 일부 혹은 전부를 계엄 사령관이 행사할 것을 국가 원수가 선포하는 명령이다. 이건 전시상황과 동일하며, 무척 심각한 사태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에 드라마 형식으로 방영 되었던 미국 영화 형사 콜롬보를 통해 미국 폭동 시위 사태를 분석 해 본다. 미국 흑인 폭동 사태로 인하여 이득 볼 사람이 과연 있는가를 필두로 시작한다. 먼저 필자가 형사 콜롬보를 통해 미국 흑인 폭동 사태를 분석하고 자 하는 이유는 이렇다. 이 영화는 살인 장면으로 시작하며, 트릭은 반드시 공개된다.
형사 콜롬보에서 나오는 살인범은 대부분 상류층으로 나타나며,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살인이 아니라 무척 계획적이고 지능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콜롬보의 모습은 어수룩하며, 수수한 복장이다. 콜롬보는 특이하게 사람에게 얕잡아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는 서두부터 결말까지 범죄 추리의 완전성을 꾀한다.
핵심 포인트가 되는 것은 형사 콜롬보는 서민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무척 수다스러우며, 가정에 충실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부유층과 서민 구도를 암시하며, 다정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형사 콜롬보를 미합중국으로 표현하며, 상류층 살인자는 백인 경찰로 대입하며, 피해자(살인을 당한 자)는 흑인으로 묘사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미국 폭동 사태 본질을 살펴보면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빈부격차다.
서럽고 불쌍하여 마음이 괴롭고 아픈 상황에 한마디 얹어보자면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60년간 간헐적으로 이어져온 미국 흑인 폭동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묵은 인종 갈등과 경제적 위기, 코로나19에 보호받지 못한 흑인사회, 그리고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패턴 화되어 있다. 이번 흑인 폭동 사태도 과히 다르지는 않다. 미국 사회는 백인들이 코로나19 봉쇄 사태에 항의하며, 총으로 무장한 채 미 지역 의회를 강압적으로 점거했을 때는 미국 정부가 이들을 폭도들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또한 폭동으로도 칭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범죄로 받아들이지 않고, 당연한 항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일변도다. 이에 대한민국 언론도 일변도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미국 상황을 지켜보는 광주시민은 격세지감에 따로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대한민국의 5.18 민주항쟁도 폭동으로 몰아갔다. 미국 각 지역에서 진행되는 항의시위를 흑인들 폭동으로 보도되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것은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폭동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혼란을 틈타 약탈을 자행하기 때문인데, 이 약탈은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도 함께 가세하는 것이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백인 폭동도 덧붙여야 공평하지 않은가의 물음이 필자의 견해다. 이것이 미국의 제일 큰 비극이다. 폭동은 분명 반국가적인 폭력 행위가 명백하다. 하지만 불공평한 사회의 피로로 인해 발생하는 것인 만큼, 주체가 어디까지 민간인인 만큼 이를 진압하는데 쓰는 무력은 제한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폭동이라고 언론이 만들어 미국 정부가 무력으로 제압하려고 하는 것이다. 폭동이 아니라 저항이고 절규다. 미국 언론이든 대한민국 언론이든 처연하고 숙연하게 이 모든 사태를 보여주어야 한다.
미국이 대한민국에서 배워야 할 것이 코로나19 대응 방법뿐만 아니라, 평화롭게 촛불 들고 뜻한 바를 이루는 민주주의 행위를 배워야한다. 진짜 중요한 건 '국민 의식이고 시민 의식'이다.
형사 콜롬보를 통해 미국 폭동 사태를 분석 해 보자면 필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현재 미국이나 한국 양국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폭동이나 폭력 시위가 보이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대한민국은 알아야 한다.
미국 흑인 폭동 사태로 인하여 이득 볼 사람이 과연 있는가에 대한 답은 뉴욕 증시이다. 뉴욕 증시는 다시 말해 재선을 염두 해 두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다. 대선의 중요한 승패는 바로 경제 성장이다. 미국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주식시장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도 투자자들은 부양책에 따른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으로 자금을 계속 옮기고 있다. 이건 트릭이며, 반드시 공개된다. 이유는 폭동을 가장한 폭등이기 때문이다.
형사 콜롬보는 미국 자본주의의 정글이다. 있는 자들만의 미국이고 그들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흑인사회는 알아 버렸다. 미국은 전 세계 국민들이 모인 이민자들의 나라다. 그래서 철두철미한 능력 사회이다. 이 사회는 어수룩하게 가장한 형사 콜롬보처럼 완전성을 꾀한다.
상류층 백인 살인자도 코로나19도 무시되면서 상승하는 미국의 증시인데, 이것은 폭동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피해자(살인을 당한 자)는 흑인이 아니라, 1%를 위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대한민국이 된다. 이번 흑인 폭동 사태가 끝나면 부서지고 망가진 회복을 위한 경제 피로회복제는 대한민국이 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아니면 대한민국은 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형사 콜롬보를 통해 미국 폭동 사태를 분석한 필자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