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6. 14:35ㆍ나의 이야기
유난히 소통이 안되는 사람의 경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불안감이 높은 경우가 많다.
그냥 타인이 하는 말 듣고 적당히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 확신이 없어서 남의 소리는 도통 귀에 들리지 않는 것.
자신감을 가져라 따위의 조언보다 그저 내가 유해하지 않음을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게 낫다.
생각이 분명하지 않으니 주변만 더듬거린다. 철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그저 그렇게 뭉뚱그리기 딱 좋다.
자신이 전공한 학문이 장식품이 될 때, 답답하다. 좋은 책을 베개로 쓰면서 내 베개 예쁘지 않냐고 자랑하는 사람 같기도 하다.
한 여학생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자신보다 못난 외모에 또한 배움이 짧은 외모에 누가 봐도 많이 떨어지는 인격체를 가진 사람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사람이 교수님이 속한 집단의 '리더'라면요.?
이 질문에 함부로 답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 뜸을 들였다. 고통스럽고 힘든 질문의 핵심을 나는 더 열심히 듣는다. 최대한 그 감정을 느끼려 노력한다. 이건 신기할 정도로 예외다. 공기처럼 스민다.
삶을 숙제하듯 사는 것과 공부하듯 사는 것. 특히 학업이 끝나고 성인이 되어 자기 주도로 인생을 꾸려나가는 시기가 되면 더욱 차이가 난다. 똑같은 시간과 장소에 같은 업종에 살아도 누군가는 예술가처럼 삶을 지나고, 누군가는 메마르게 산다. 좌절은 그림자처럼 발꿈치에서 떨어지지 않고, 비극은 계속되고, 나는 사건의 잔해 속에 때로 머리를 묻는다. 머리만 톱밥 속에 묻으면 숨을 수 있다고 믿는 햄스터처럼. 그러나 우리 모두 늘 결국은 필사적이다. 어디로 가든, 제각기 자기 자리에서 여전히 어떻게든, 무엇이든 하고, 다시 만난다.
그 여학생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했다.
내 상황이 나빠지면 타인과 비교하게 되는 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내 상황의 낮은 지점과 그 사람 상황의 높은 지점을 비교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경험한 사람이 있다. 그는 못난 외모이고, 학력도 그러하다. 그는 그럼에도 못난 짓을 했다.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을 험담하고, 모함까지 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대신해서 단죄를 강행했다. 그는 울먹였다.
하지만 더 화가 난 건 자신이 할 일을 못 찾는 것 때문이었다. 얼마 전 유명 연예인이 그랬던가. 법정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카메라를 보면서, 또 그런 상황이 오면 똑같은 행동을 할 거라고 말이다. 나도 그 당시 상황이 똑같이 온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끝으로 질문한 여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토론 전문가들이 좋다. 그들은 상대를 밀도 있게 혼낸 다음 그들 인생에서 사라져 준다. 토론이 끝나면 책 한 권을 읽은 기분이 든다. 자신이 가진 것이 모두 못난 것이라고, 생각까지도 못나면 그 사람은 집단에서 퇴출되어야 한다"라고 말이다.
나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요즘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김 사부 2'에서 나오는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같은 시덥잖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우습고 초라해져. 사람에게 과몰입하는 버릇 고치고 광명 찾자.
동물들 보면 그 무해함 앞에서 내가 인간인 게 부끄럽고, 겸연쩍어져. 코로나의 해독제는 바로 무해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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